감동 이야기, "인류 건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저" 정식품(베지밀) 창업 스토리
정식품의 창업자인 정재원 명예회장의 인생은 한국의 식품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공적인 창업 이야기이다. 정재원 회장은 "인류 건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국내 최초로 두유 제품 베지밀을 개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도전과 실패, 그리고 끝없는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유산은 지속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의사의 꿈
정재원 회장은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 자랐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상경한 그는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대중목욕탕의 심부름꾼부터 모자 가게 점원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고된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의학강습소의 급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때 의학 교재를 접한 그는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경야독을 통해 의사 자격증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37년에 서울 성모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가 직면한 문제들이 그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신생아들이 설사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원인을 밝히고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신생아의 죽음, 그리고 유당불내증 발견
의사로 활동하던 중, 정재원 회장은 신생아들이 소화불량으로 인한 설사병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특히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하루 동안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온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차트를 보며 병명을 ‘소화불량’이라고 진단했지만, 아이는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신생아들의 설사병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무력감을 느끼며 의사로서의 사명을 되새기게 되었다.
정재원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40대 중반에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가족과 안정된 삶을 뒤로한 채, 의학 선진국에서 신생아 설사병의 원인을 찾고자 영국과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도서관에서 소아과 교재를 읽던 중,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라는 병명을 접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왔던 문제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다.
두유 개발의 시작
유당불내증은 신생아들이 모유나 우유의 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이로 인해 설사와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재원 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유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체 식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던 콩국을 떠올렸고, 콩을 사용한 두유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 명동에서 정소아과를 운영하며, 두유 개발에 몰두했다. 그의 아내는 맷돌로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었고, 정재원 회장은 두유가 신생아들에게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반복했다. 병원의 지하실에서 실험용 쥐들에게 두유를 먹이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신생아들에게 적합한 두유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정식품의 탄생과 베지밀의 성공
두유 개발에 성공한 후, 정재원 회장은 두유를 필요로 하는 신생아들이 증가하면서 두유를 대량 생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73년에 정식품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두유의 대량 생산에 나섰다. 두유의 제품명은 식물성 우유를 뜻하는 'Vegetable'과 'Milk'를 합친 베지밀로 정했다.
정재원 회장은 신생아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두유 개발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베지밀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현재 베지밀은 두유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식품은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는 대표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 건강을 위한 사명감
정재원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며 단순한 이익 창출이 아닌 인류 건강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 그는 항상 "인류 건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자"라는 창업 이념을 강조했다. 그에게는 단순한 식품 개발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제공하고자 하는 신념이 있었다.
정식품은 베지밀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개발하며, 건강한 식생활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정재원 회장은 청년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가난한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끊임없는 도전과 헌신을 통해 성공을 이룬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아내와 함께한 도전과 성공
정재원 회장의 성공 뒤에는 아내 김금엽 여사의 헌신이 있었다. 김금엽 여사는 남편과 함께 두유 개발에 힘썼으며, 두유의 대량 생산을 위한 정식품 창업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정식품의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기업 성장에 기여했다. 김금엽 여사는 2004년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정재원 회장은 그녀를 떠나보내며 평생 간직했던 결혼 예복을 입고 장례식을 치렀다.
맺음말: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정재원 명예회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어려운 출발점에서 시작했더라도, 끊임없는 도전과 헌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가로서도 인류 건강을 위한 가치를 실현했다. 청년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도전 정신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실현해 나가길 바란다.